오늘날 한국 사회는 정치적 신념이 종교화되는 현상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특정 정치 성향이나 이념이 개인 정체성의 중심을 차지하고, 대화와 설득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상황이 확산되고 있다.

이념 간의 갈등은 과거에도 존재했지만, 최근 들어 더욱 뚜렷한 특징은 상호 이해를 위한 노력보다 상대에 대한 일방적 부정과 혐오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경쟁에 대한 태도나, 개인의 자율성보다 평등 개념을 절대시하는 경향은 교육, 자녀 양육, 노동 정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제적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부 집단에서는 ‘경쟁은 해악’이라는 전제를 공유하며, 이를 대안 교육이나 공동체적 삶의 방식으로 치환하려 한다. 이들의 입장은 자녀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인간 중심의 가치를 회복하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같은 주장이 객관적 근거나 실효성에 대한 검토 없이 이념적으로 고착화될 때 발생한다. 경쟁이라는 사회적 원리를 단순히 불평등의 산물로만 인식하는 시각은, 자칫하면 역동성과 발전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이러한 이념적 확신이 가족, 친구, 직장 동료와의 관계마저 단절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신념이 신념을 넘어선 순간, 다른 생각을 가진 이는 교화의 대상이 아니라 배척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건설적 비판은 사라지고, 동일한 목소리만이 옳다고 믿는 집단사고가 자리 잡는다.

사실 신념이 강하다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 신념이 모든 사적, 공적 판단을 지배할 때 발생한다. 다양한 견해의 존재를 인정하지 못하고, 상대를 이해하려는 최소한의 시도조차 거부하는 태도는 민주 사회의 건강한 공론장을 위협한다.

이념은 바뀔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개인의 경험, 정보의 접촉, 주변인의 변화 등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수정해 나간다. 그러나 신념이 종교화될 경우, 정보 노출과 경험의 축적조차도 필터링되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설득은 실패하며, 단절과 분열만이 남는다.

사회는 다시 숙의와 설득의 문화를 회복해야 한다. 다름을 전제하고, 토론과 논쟁을 통해 공동의 사실과 가치 기준을 찾아가는 노력이 요구된다. 특히 교육, 언론, 정치권은 이러한 공론의 회복을 위한 제도적 역할을 다해야 한다.

설득이 가능한 사회는 건강하다. 설득이 불가능한 사회는 파편화된다. 이념이 신념을 넘어 신앙이 되어가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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